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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동피랑 마을 아래 숨겨진 근대 무역 터 – 사라진 부두를 따라 걷다 통영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푸른 바다와 다도해를 배경으로, 바닷바람을 맞으며 회 한 접시를 즐길 수 있는 도시로 익숙하지만, 그 이면에는 오랫동안 사람과 물자, 정보가 오가던 해상문화의 중심지로서의 깊은 역사가 숨어 있다. 특히 벽화로 유명한 동피랑 마을은 오늘날 많은 관광객이 찾는 사진 명소지만, 바로 그 아래쪽에 있는 언덕 아래의 항구 공간은 사람들이 거의 주목하지 않는 장소다.하지만 그곳에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직후까지 근대 해상무역의 실제적 터전이 있었고, 지금도 그 흔적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동피랑은 원래 통제영의 동쪽 포루(砲樓), 즉 '동포루'가 있던 곳으로, 통영항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군사적 감시 고지였다. 그러나 근대에 접어들며 이곳은 점차 군사적 기능에서 생활과 생업의 공간..
속초 청대산 정상에 남은 옛 제단터 – 사라진 민간신앙의 흔적을 따라 걷다 속초는 설악산과 동해바다 사이에 자리한 도시다. 관광객들에게는 설악산의 웅장함과 영금정, 속초항의 싱싱한 회거리로 기억되지만, 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크고 작은 산들과 마을에는 관광 안내서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청대산은 속초 시민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이지만, 외지인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청대산은 해발 450m 남짓한 낮은 산이지만, 과거에는 속초 동쪽 마을 사람들의 산신제와 공동 기도의 대상이었고, 등산로 곳곳에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특히 청대산 동사면에 자리했던 옛 민간신앙 제단터는 한때 마을 공동체 전체가 모여 정한수를 올리고, 풍어를 기원하며 제를 지내던 신성한 공간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지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고, 등산객들도 대부분 그 존재를 ..
제주 표선 해안의 숨겨진 흔적 – 일제 밀수선이 닿았던 그곳을 걷다 제주도는 단순한 관광 섬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제주의 해안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바닷가의 모습이지만, 그 바다 아래에는 수백 년간 쌓인 이주, 교역, 통제, 감시, 침략, 그리고 저항의 흔적들이 깊이 눌려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당시 제주도는 일본군에게 군사적으로, 그리고 물류상으로 매우 중요한 지점이었으며, 해안선을 따라 공식 지도에 나오지 않는 접안 지점과 잠입 경로가 수없이 존재했다.그중 제주 남동부에 위치한 표선면 해안 일대는 수심이 얕고 바람이 상대적으로 적은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일제 시절 공식 항구가 아닌 비공식 밀수선 접안 장소로 활용되었다는 전승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표선면은 지금은 관광지로 개발된 표선해수욕장을 중심으로 조용한 바닷가 마을이 형성되어 있지만, 주민 중 ..
인왕산 정상 인근 금줄터 – 서울 도심 속 민간신앙의 숨겨진 자리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현대화된 도시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 도심 속에는 여전히 눈에 잘 띄지 않는 고대적 시간과 전통 신앙의 흔적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그 중심에 인왕산이 있다. 인왕산은 북한산국립공원에 속하며, 청와대와 경복궁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어 예로부터 풍수지리의 핵심축으로 여겨져 왔다. 이 산은 단지 등산로만 있는 자연 공간이 아니라, 실제로 조선시대 궁중 무속, 민간 제사, 그리고 여성 공동체 신앙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장소다.이번에 주목할 장소는 인왕산 정상 인근, 서쪽 능선 아래 자락에 위치한 ‘금줄터’로 알려진 구간이다. 이곳은 지도에 명시되어 있지도 않고,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이 구역을 그냥 지나친다. 그러나 인왕산을 오랜 시간 오르며 기도와 제사를 이어온 사람들, 특히 중..
보령 대천해수욕장 뒷산의 비밀 – 일제 탄약고와 마을 전설 보령의 대천해수욕장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름 관광지 중 하나로, 매년 수십만 명의 피서객이 찾는다. 백사장의 넓이와 파도의 잔잔함, 주변의 편의시설과 다양한 해양 축제들 덕분에 대천은 충청남도의 얼굴이라 불릴 정도다. 하지만 화려한 관광지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뒷면이 있다.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그 이면을 보려 하지 않거나, 아예 존재조차 알지 못한 채 지나친다.대천해수욕장의 뒷산, 즉 피암산과 그 주변 구릉은 평소 관광객들이 거의 오르지 않는 곳이다. 숲은 조용하고, 길은 어색하게 휘어져 있다. 그런 공간 어딘가에,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군이 설치한 탄약고가 존재했다는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조용히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누군가는 어린 시절 몰래 그곳에 들어갔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
고창 읍성 외곽에 숨겨진 일제 밀정 은신처 – 기록되지 않은 역사 고창 읍성은 전라북도 고창군에 위치한 대표적인 조선시대 방어 성곽이다. 성 안에는 향토관, 무기고, 옛 관아 건물 등이 잘 복원되어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 인기 명소지만, 사실 읍성 밖으로 몇 걸음만 벗어나면 전혀 다른 시간과 분위기가 흐르는 공간이 펼쳐진다.그곳은 공식 안내서에도 등장하지 않고, 안내 표지판 하나 없이 숲과 밭, 오래된 흙담 사이에 조용히 숨겨져 있다. 그런데 바로 그 공간 어딘가에 일제강점기 밀정들이 몸을 숨기고 활동을 조율했다는 ‘비공식 은신처’가 존재했다는 이야기가 조용히 전해지고 있다.이 이야기는 문헌으로 남아 있진 않지만, 고창 지역 토박이 노인들과 향토사 연구회, 그리고 지역 중학생들의 ‘구술기록 프로젝트’ 등을 통해 일부 단서가 퍼즐처럼 이어지고 있다.어딘가에 숨어 있었던..
포항 내연산 숲속의 숨겨진 기도처 – 은둔한 승려들의 고요한 수행지 포항의 내연산은 사계절 내내 관광객과 등산객들로 붐비는 대표적인 명소 중 하나다. 12폭포로 대표되는 아름다운 계곡과 울창한 숲길, 보경사로 이어지는 사찰길은 자연과 불교가 어우러진 치유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 인기 명소의 이면에는, 관광 안내서에도 나오지 않는 고요한 기도처의 흔적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이번에 소개할 장소는 내연산 숲길의 북쪽 외곽, 보경사에서 떨어진 조용한 오솔길 끝자락에 있는 무명 기도처에 관한 이야기다. 이곳은 이름 없는 소나무 숲을 지나야 하고, 지형은 완만하지만 길이 뚜렷하지 않아 지도나 앱에서는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역 노인들, 보경사 일부 승려, 그리고 오래된 등산객들 사이에서는 “예전에 고승들이 수행했던 기도처가 숲 안에 있다”..
춘천 봉의산 정상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탑의 흔적 – 잊힌 폐사지 탐방기 춘천은 일반적으로 호수와 레저, 닭갈비로 기억되는 도시다. 그러나 그 표면 아래에는 관광지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깊고 조용한 역사적 공간들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춘천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봉의산이다. 봉의산은 시민들이 자주 찾는 산책 코스이지만, 그 정상부에 고려시대의 폐사지와 탑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춘천 시내를 내려다보는 봉의산 정상은 지금은 단순한 쉼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과거 사찰이 존재했던 자리다. 이곳에서는 지대가 넓게 평탄하게 조성되어 있고, 일부 석축과 석재 유물들이 남아 있어 전문가들은 이 자리를 고려 중후기 사찰의 터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답사자들에 의해 탑재로 보이는 석재와 기단석이 부분적으로 확인되면서, 과거 이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