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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여행

인왕산 정상 인근 금줄터 – 서울 도심 속 민간신앙의 숨겨진 자리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현대화된 도시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 도심 속에는 여전히 눈에 잘 띄지 않는 고대적 시간과 전통 신앙의 흔적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그 중심에 인왕산이 있다. 인왕산은 북한산국립공원에 속하며, 청와대와 경복궁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어 예로부터 풍수지리의 핵심축으로 여겨져 왔다. 이 산은 단지 등산로만 있는 자연 공간이 아니라, 실제로 조선시대 궁중 무속, 민간 제사, 그리고 여성 공동체 신앙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장소다.

이번에 주목할 장소는 인왕산 정상 인근, 서쪽 능선 아래 자락에 위치한 ‘금줄터’로 알려진 구간이다. 이곳은 지도에 명시되어 있지도 않고,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이 구역을 그냥 지나친다. 그러나 인왕산을 오랜 시간 오르며 기도와 제사를 이어온 사람들, 특히 중·노년 여성 신도들 사이에서는 “그곳에 금줄이 쳐졌던 자리”, “아기를 가진 여인이 접근하지 못하던 금기 구역”으로 알려져 있다.

인왕산 정상과 주변 지형 – 바위와 숨은 제의 공간

인왕산은 해발 338.2m로 높지 않지만, 지세가 험하고 바위 능선이 뚜렷하다. 특히 정상 인근으로 오르면 서쪽과 남쪽으로 바위 능선이 벌어지고, 그 틈 사이로 마치 작은 단(壇)처럼 움푹 들어간 공간들이 이어진다. 이곳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절벽 틈이나 평탄한 암반 위에 자리를 잡고 있어 기도 장소, 제사 공간으로 이상적인 입지를 가진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약 50m 정도 하산하다 보면, 나무가 얕게 우거지고 바위 틈이 엇갈리는 공간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민간신앙에서 말하는 ‘금줄터’였다고 전해지는 자리다. 오래된 사진이나 문헌에서는 명확히 확인되지 않지만, 구전 전승과 현장의 구조, 그리고 일부 지형 특성(바람이 막히는 고요함, 물기가 적은 지대, 바위 위 자연 평면) 등이 그 기능을 추정할 수 있게 한다.

이 지역은 조선시대 궁중무속과 관련된 기록에서 “인왕산 금단지(禁斷地)”로 표현되며, 외부인의 접근을 제한한 장소로 기록된 바 있다. 금줄은 원래 아기를 낳은 집이나 장례 직후에 금기를 알리는 표시로 사용되었지만, 산신제, 여성 공동체 제의, 마을의 보호막으로서 기능하기도 했다. 특히 이 구역은 과거 여성 무속인이나 수행자들 사이에서 “남성은 들어가지 말 것”, “불경스러운 사람은 금줄 넘지 말 것”이라 전해졌다고 한다.

인왕산 정상 인근 금줄터 – 서울 도심 속 민간신앙의 숨겨진 자리

금줄터 – 민간신앙에서 ‘금줄’이 가진 복합적 의미

금줄은 한국 민속에서 가장 오래된 경계 표식 중 하나다. 단순히 줄에 금색을 입힌 것이 아니라, 금기(禁忌)의 공간을 시각적으로 표시하고, 신성과 인간의 세계를 분리하는 상징 도구로 작용했다. 보통은 태어난 아기를 보호하기 위한 가정용 금줄이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산간 지역이나 제의 장소에서는 제사의 전과 후에 금줄을 세워 신의 공간을 보호하거나, 외부인을 차단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인왕산 정상 인근의 ‘금줄터’로 알려진 자리도 바로 이런 맥락과 연결된다. 이곳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 오르던 수행자들이 마지막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닫고, 숨을 고르는 장소였다고 한다. 특히 여성 중심의 무속 전통에서는 이 공간을 넘기 전 금줄을 세우고, 그 너머는 신과 연결되는 구역으로 인식했다. 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와 연결되는 '경계 장치'였던 셈이다.

또한 구전 전승에 따르면, 금줄을 넘을 수 있는 자는 일정한 자격(정한수 단식 수행, 정해진 시간의 독경 수행 등)을 갖춘 자만 가능했다. 이는 곧 금줄터가 단순한 금기 구역이 아니라, 신과 인간의 경계지점에서 신성함을 유지하기 위한 의례의 일부였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민간신앙은 문헌보다도 현장의 분위기, 공간의 구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이 장소를 직접 찾아가고 기록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장 탐방기 – 돌, 바람, 그리고 말 없는 경계

나는 인왕산을 여러 번 오르며 이 ‘금줄터’라는 공간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야말로 그 이야기를 직접 확인하고 기록하겠다는 마음으로 올랐다. 해질 무렵, 사람들의 왕래가 줄어드는 시간대를 선택했고, 가장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그 자리를 느껴보고자 했다.

정상에 도달한 뒤, 서쪽 능선을 따라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일반 등산로는 뚜렷했지만, 금줄터로 가는 길은 풀과 나무가 부분적으로 가리고 있었고, 바위를 기준으로 방향을 잡아야 했다. 10분쯤 내려가자, 작은 움푹한 바위 터가 나타났다. 누가 의도적으로 만든 것은 아닌 듯했지만, 놀랍게도 그 중앙에는 마치 누군가 앉았던 것 같은 좌선 자국과, 바위 위에 엷게 녹슨 철심이 박힌 흔적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 앉아 눈을 감았다.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았고, 사람 소리도 멀리 사라진 느낌이었다. ‘금줄’이라는 단어가 단지 줄 하나의 의미가 아니라, 그 공간을 둘러싼 시간, 기억, 금기의 감정이라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자리에 앉은 몇 분 동안, 나는 오히려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긴장’을 느꼈다. 그것은 무섭거나 불편한 감정이 아니라, 경건함과 무의식적인 존중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돌 위에는 탄 자국 같은 흔적이 남아 있었고, 주변에는 작은 나뭇가지나 묵은 천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오래 전 누군가 이곳에서 제를 올리고, 금줄을 걸었으며, 그 뒤로 아무도 손대지 않은 듯한 조용한 흔적이었다. 나는 사진도 많이 찍지 않았다. 기록은 내 마음속에 담고, 그 공간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글로 남기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