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대천해수욕장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름 관광지 중 하나로, 매년 수십만 명의 피서객이 찾는다. 백사장의 넓이와 파도의 잔잔함, 주변의 편의시설과 다양한 해양 축제들 덕분에 대천은 충청남도의 얼굴이라 불릴 정도다. 하지만 화려한 관광지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뒷면이 있다.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그 이면을 보려 하지 않거나, 아예 존재조차 알지 못한 채 지나친다.
대천해수욕장의 뒷산, 즉 피암산과 그 주변 구릉은 평소 관광객들이 거의 오르지 않는 곳이다. 숲은 조용하고, 길은 어색하게 휘어져 있다. 그런 공간 어딘가에,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군이 설치한 탄약고가 존재했다는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조용히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누군가는 어린 시절 몰래 그곳에 들어갔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지금도 밤이면 그 근처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한다.
대천해수욕장과 뒷산(피암산)의 지형 구조
대천해수욕장은 보령시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서해안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해수욕장이다. 해변 자체는 넓고 완만하며, 백사장 길이는 약 1.5km, 폭은 최대 100m에 달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곳을 '휴양의 공간'으로 기억하지만, 바다를 등지고 서면 우리가 흔히 보지 못했던 산의 지형과 구조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해수욕장 바로 뒤편에는 피암산(약 195m)과 죽도산, 그 외 이름 없이 지도에조차 잘 표시되지 않는 작은 구릉과 야산들이 흩어져 있다. 이 산들은 크게 높지는 않지만, 전체 해변과 도심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며, 실제로 조선시대부터 감시와 군사적 목적의 산책로 및 망루가 존재했던 곳이기도 하다.
특히 피암산 중턱의 북서쪽 사면은 지형이 자연스럽게 움푹 꺼져 있어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으며, 비가 와도 물이 고이지 않는 배수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 곳에 일제가 탄약고를 설치했다는 주장은, 단순히 상상이라기보다는 전략적 지형 분석에 따른 설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작용한다.
현장에서는 일반 등산로가 없어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지만, 수풀을 걷고 좁은 오솔길을 따라가다 보면 산비탈 안쪽에 시멘트 구조물로 막힌 인공적인 동굴 입구가 나타난다. 바위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인공적으로 타설한 콘크리트 질감이 드러나고, 외벽 일부에서는 철근과 녹슨 금속 문틀이 확인된다. 이러한 특징은 농업용 저장고나 민가의 창고와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며, 군사용으로 계획되고 건설된 구조물일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일제 탄약고 흔적 – 구조물과 주민 증언
탄약고로 추정되는 구조물은 숲길 중간에서 우연히 발견할 수 있었다. 전체 구조는 지면보다 약간 낮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출입문은 봉쇄된 철제문으로 단단히 막혀 있었다. 문 주위는 콘크리트로 덧대어져 있었고, 벽체는 표면 마감이 매끄럽지 않은 거친 시멘트 재질로, 1930~40년대 일본군 시설물의 특징과 유사했다.
벽면 일부에는 철판이 박혀 있었고, 그 철판에는 ‘昭和十七年’(쇼와 17년, 즉 1942년)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이는 당시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한창 벌이던 시기였고, 조선 전역에 걸쳐 전쟁 물자 보관소가 다수 설치되던 시기와도 일치한다.
주민 증언은 이 구조물이 실제로 오래된 기억 속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한 80대 어르신은 “어릴 적에 친구들과 몰래 들어갔다가 안에서 이상한 철제 소리와 바람 소리를 듣고 도망친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또 다른 주민은 “1960년대 후반까지도 누군가 이곳을 정기적으로 관리하는 듯한 낌새가 있었고, 가끔 양복 입은 남자들이 와서 들여다보고 갔다”고 말한다.
이러한 증언은 단지 동네 민담 수준이 아니라, 실제 관리 체계가 있었던 폐쇄 군사 시설일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특히 “말 타고 온 사람”이나 “해군 군복을 입은 노인들이 갔다”는 증언은 이 장소가 단순 보관소가 아니라 통신·유통·밀수와 관련된 다목적 탄약 처리 장소였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마을 전설 – 열지 못한 문, 밤의 소리
보령 지역에서 오랫동안 전해지는 이야기 중 하나는 “그 철문 안에는 지금도 뭔가 있다”는 전설이다. 탄약고 입구는 1970년대 이후 봉인되었고, 주민들 사이에선 “누군가 안에 남겨진 걸 숨기기 위해 영구적으로 닫아버렸다”는 해석이 떠돌았다.
특히 “해무가 끼는 밤에는 그 문 주변에서 사람 발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철문 안쪽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는 증언은 단순한 공포심이 아니라, 그 장소가 오랫동안 마을 사람들에게도 낯설고 두려운 장소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 그 주변에 가면 어른들이 “그쪽 가지 마라. 거기 귀신 산다”는 말을 했다는 회상도 많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 전설이 단지 오싹한 이야기로 그치지 않고 ‘금기’의 성격을 지녔다는 것이다. 누군가 묻히거나, 숨겨진 물건이 있거나, 아니면 감춰야 했던 문서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상상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
지역 향토사 연구회 관계자는 “마을 주민들 대부분은 그 장소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리며, 행정기관에 문의가 들어와도 ‘없다’고 답하거나 ‘기억이 안 난다’고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며, 집단적 망각 혹은 의도된 침묵의 가능성을 지적한다.
이러한 전설은 단순한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마주하지 않은 채 남겨둔 역사이며, 지워진 기록이 사람들의 감정 안에서 다시 되살아난 형태의 민속 기억이다.
'역사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통영 동피랑 마을 아래 숨겨진 근대 무역 터 – 사라진 부두를 따라 걷다 (0) | 2025.06.25 |
---|---|
속초 청대산 정상에 남은 옛 제단터 – 사라진 민간신앙의 흔적을 따라 걷다 (0) | 2025.06.24 |
제주 표선 해안의 숨겨진 흔적 – 일제 밀수선이 닿았던 그곳을 걷다 (0) | 2025.06.23 |
인왕산 정상 인근 금줄터 – 서울 도심 속 민간신앙의 숨겨진 자리 (0) | 2025.06.22 |
고창 읍성 외곽에 숨겨진 일제 밀정 은신처 – 기록되지 않은 역사 (0) | 2025.06.18 |
포항 내연산 숲속의 숨겨진 기도처 – 은둔한 승려들의 고요한 수행지 (0) | 2025.06.17 |
춘천 봉의산 정상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탑의 흔적 – 잊힌 폐사지 탐방기 (0) | 2025.06.16 |
사라진 광부 마을, 한반도 폐광촌에 남겨진 유적을 걷다 (1) | 2025.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