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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여행

포항 내연산 숲속의 숨겨진 기도처 – 은둔한 승려들의 고요한 수행지

포항의 내연산은 사계절 내내 관광객과 등산객들로 붐비는 대표적인 명소 중 하나다. 12폭포로 대표되는 아름다운 계곡과 울창한 숲길, 보경사로 이어지는 사찰길은 자연과 불교가 어우러진 치유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 인기 명소의 이면에는, 관광 안내서에도 나오지 않는 고요한 기도처의 흔적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이번에 소개할 장소는 내연산 숲길의 북쪽 외곽, 보경사에서 떨어진 조용한 오솔길 끝자락에 있는 무명 기도처에 관한 이야기다. 이곳은 이름 없는 소나무 숲을 지나야 하고, 지형은 완만하지만 길이 뚜렷하지 않아 지도나 앱에서는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역 노인들, 보경사 일부 승려, 그리고 오래된 등산객들 사이에서는 “예전에 고승들이 수행했던 기도처가 숲 안에 있다”는 조용한 구전이 이어져왔다.

그 기도처에는 부서진 바위 단상과 염주 흔적, 작게 파인 좌선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으며,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상태로 숲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내연산 숲길을 따라 그 조용한 공간을 직접 찾아가보고, 무명의 승려들이 왜 이 깊은 숲 속을 선택했는지, 그 흔적과 분위기를 탐방기로 전하고자 한다.

내연산 숲길의 구조와 잘 알려지지 않은 외곽길

내연산은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에 걸쳐 있는 해발 710m의 산으로, 보경사와 12폭포, 관음폭포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등산객들이 이용하는 루트는 보경사 매표소를 출발해 폭포 군을 따라 상단부까지 올라가는 등산 코스이지만, 내연산의 진짜 매력은 지도에 나오지 않는 외곽 숲길들에 있다.

그 중에서도 북쪽으로 이어지는 소나무 숲길은 등산객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으며, 수풀이 자주 길을 가리기 때문에 사람보다 동물의 흔적이 더 뚜렷한 공간이다. GPS 수신도 일정치 않고, 표지판도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방문객은 이 길을 모르거나 피한다. 그러나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갑자기 풀숲 사이로 작은 돌단이 쌓인 장소가 나타난다.

현지 노인들과 보경사 인근 수행자들의 구술에 따르면, 이 길 끝에는 예전부터 고승들이 은거하며 좌선과 기도를 했던 수행처가 있었다고 한다. 기록에 명확히 남아 있진 않지만, 몇몇 구전 자료에서는 “40일 정진을 위해 깊은 산 속에 따로 기도처를 마련했다”거나 “비가 와도 앉을 수 있는 돌단상에서 매일 염송을 이어갔다”는 내용이 반복된다.

이런 이야기들은 단순한 전설처럼 들릴 수 있지만, 실제 그 지점에 다다르면, 이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는 확신에 가까운 느낌을 받게 된다.

포항 내연산 숲속의 숨겨진 기도처 – 은둔한 승려들의 고요한 수행지

은둔 승려들의 기도처 – 사람 없는 공간의 침묵

기도처는 일반적인 사찰이나 암자처럼 구조가 뚜렷하지 않다. 건물은 없다. 그러나 그곳엔 사람의 손길이 분명히 닿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숲 속에 불규칙하게 놓인 바위 위에 평평하게 다듬어진 단상이다. 약간의 계단 형식으로 돌을 얹어 만든 그 구조물은 비가 와도 앉을 수 있을 정도의 높이와 너비를 갖추고 있었으며, 일부는 좌선 시 발이 닿는 위치에 맞춰 움푹 들어간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단상 주변에는 몇 개의 작은 석탑 모양 돌무더기와, 타다 남은 재 흔적, 그리고 주변에 부러진 목탁 나무 조각 같은 불교 수행 도구의 흔적이 흩어져 있다. 누군가 일부러 설치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수행을 지속했던 장소라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이곳에 머물렀던 승려들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기록도 없고, 사진도 없다. 그러나 “그분들이 나왔던 날은 산속에 바람도 울었다”, “그 숲에서 기도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느껴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단지 수도의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과 마주했던 장소였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기도는 소리 없이 깊어지고, 그 깊이는 지금도 그 공간에 남아 있다. 오늘날 아무도 찾지 않지만, 그 자리에는 침묵이 남아 있었고, 그 침묵이 바로 수행의 기록이자 증거였다.

현장 탐방기 – 내연산 숲의 정적 속에서 마주한 시간

나는 이 기도처의 존재를 우연히 접한 뒤, 봄이 막 시작되는 날에 내연산 북쪽 숲길을 따라 걸었다. 보경사 입구를 지나,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폭포 방향으로 향하는 것을 뒤로하고, 나는 사람이 거의 가지 않는 숲길 방향으로 방향을 틀었다. 안내 표지판은 곧 사라졌고, 길은 점점 희미해졌다.

숲은 조용했다. 정말로 조용했다. 새 소리도, 바람 소리도 너무 잔잔해서 내가 걸음을 멈춰야만 들을 수 있었다. 한참을 걸었을까. 어느 순간, 풀숲 사이에서 돌로 얕게 쌓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위에는 나뭇잎이 얇게 쌓여 있었고, 낯선 기운이 조용히 나를 감쌌다.

나는 그 자리에서 가만히 앉았다. 아무도 없고,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그 공간에서, 나는 말없이 눈을 감고 내 숨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몇 분, 혹은 몇 시간이 흘렀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은 시간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듯했다.

기도처는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강한 존재감을 가진 공간이었다. 내가 앉은 자리는 누군가 수십 년 전, 아니 수백 년 전에도 앉았을 자리일 수도 있었다.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무엇을 기도했을지는 모르지만, 그 의식의 잔영이 아직도 그 공간에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자리를 떠나며,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사진도 찍지 않았고, 돌도 만지지 않았다. 단지, 그곳에 존재했다는 사실만 내 안에 남겨 두었다. 그게 내 방식의 예의였다.

정리 – 잊힌 수행의 공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내연산 북쪽 숲의 기도처는 지도에도, 관광 안내에도, 역사서에도 없다. 그러나 실제 존재하는 공간이고, 조용히 호흡하는 유산이다. 누군가 그곳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고, 세상의 소음과 욕망을 내려놓기 위해 그 깊은 숲 속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전설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유명한 것’을 기록하려 한다. 그러나 진짜 가치 있는 장소는 때로 이름이 없고, 안내가 없으며, 소리조차 없는 공간에 있다.

기도처는 말이 없다. 하지만 그 자리에 다녀온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그 공간이 가진 침묵의 힘을.
우리는 그 침묵을 들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그것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