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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여행

제주 애월읍 무명오름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감시초소 흔적

제주는 수많은 ‘오름’으로 이루어진 섬이다. 각각의 오름은 뚜렷한 이름과 설화를 가지고 있지만, 이름조차 없는, 이른바 ‘무명오름’이라 불리는 작은 봉우리들도 곳곳에 숨겨져 있다. 특히 제주 서쪽 애월읍 일대에는 관광지로 개발되지 않은 낮고 둥근 오름이 여럿 존재하며, 이 중 일부는 지도에도 명확히 표기되지 않아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도 불리는 이름이 없거나 단지 ‘그 오름’이라 지칭되곤 한다.

이번 글에서는 애월읍 외곽 마을 인근, 해안가에서 멀지 않은 야산 하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 오름은 이름이 없어 ‘무명오름’이라 부르지만, 그곳 정상 부근에서 발견된 낡은 돌무더기와 낮은 석축 구조는 단순한 자연물로 보기 어려운 특징을 지닌다. 여러 차례 현장 탐방을 거쳐 조사한 결과, 이 구조물은 조선시대 ‘해안 감시초소’ 또는 ‘망방초소’의 잔재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제주 애월읍 무명오름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감시초소 흔적

무명오름의 위치와 지형적 특징

이 무명오름은 제주특별자치도 애월읍 고내리와 곽지리 사이, 해안도로에서 차량으로 약 10분 정도 내륙 쪽으로 들어간 지역에 위치한 고도 약 120m의 낮은 화산체 지형이다. 등산로도, 안내 표지판도 존재하지 않으며, 접근은 대부분 밭 사이로 난 비포장 농로를 통해 이루어진다. 정상까지는 도보로 약 15~20분이 소요되며, 전체적으로 급경사는 없고 부드럽게 말린 형태를 띤다.

정상부에 오르면 북서쪽으로는 바다가, 동쪽으로는 한라산 방향의 낮은 구릉지대가 조망되며, 주변의 다른 오름들보다 시야 확보가 좋은 편이다. 특히 남서쪽과 북서쪽 시야가 탁 트여 있는 구조는 해안 감시용 관측지점으로서 기능하기에 적합한 지형 조건을 갖추고 있다. 풍속이 강하고, 주변에 높은 수풀이 적어 신호 연기, 횃불 사용 등 시각적 통신 수단을 운용하기에 유리한 위치다.

주변 농민들 사이에서는 이 오름을 ‘옛날 군인들이 서 있던 데’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하며, 고령의 마을 주민 일부는 “할아버지 때 이야기로 들은 기억이 있다”고 말한다. 이런 정황을 종합하면, 이 오름은 이름도 없지만 실제로 조선 시대에 군사적 감시 기능을 수행했을 가능성이 높은 장소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제주 감시초소의 기능과 배경

조선시대 제주도는 단순한 섬이 아니었다. 그 위치상 중국과 일본 사이의 해상 전략 요충지였으며, 외세 침입이나 밀무역, 표류선 감시 등의 기능을 위해 제주 곳곳에는 ‘망방’이라 불리는 감시초소가 설치되었다. 망방은 산꼭대기나 해안 절벽, 오름 등에 세워졌으며,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을 사용해 신호 체계를 유지했다. 이 체계는 관방 체계와 연결되어 조선의 군사 및 해상 경계 시스템을 구성했다.

애월읍 일대는 특히 조선 후기까지 왜구의 출몰, 밀무역 선박, 난민선, 도망선 등이 자주 포착되던 지역으로, <탐라순력도>나 <조선방역지도> 같은 역사 자료에서도 애월~한림 구간에 최소 6개 이상의 망방 시설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일제강점기 농지 개간, 도로 정비, 현대화 개발 과정에서 철거되거나 흔적 없이 사라졌다.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실체는 기록 없는 돌무더기, 석축 잔해, 지형적 단서뿐이다. 이번에 탐방한 무명오름 정상부의 돌무더기는 약 1.2m 높이의 석축 잔해로, 한쪽은 절벽을 향하고 다른 한쪽은 평지 방향으로 개방된 구조다. 이는 감시 기능을 위해 시야 확보를 최우선으로 설계되었음을 보여주며, 누군가를 지켜보고, 대비하고, 경고하기 위한 장소였다는 가능성을 높인다.

돌무더기 위, 바람과 침묵이 전하는 느낌

나는 이 무명오름에 도착하기 위해 밭 사이 비포장 도로를 따라 들어갔다. 길은 정비되지 않았고, 길목에는 키 작은 감귤나무와 방치된 폐농막이 드문드문 보였다. 중턱에 이르러서는 등산로라 부를 만한 흔적도 없었고,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흔적이 역력했다. 풀을 헤치며 정상부로 오르자, 돌무더기 하나가 조용히 나를 맞이했다.

처음엔 단순한 자연석 더미로 보였지만, 돌은 일정한 방향으로 정렬되어 있었고, 그 안쪽은 움푹 파인 형태였다. 바람은 강하게 불었고, 그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 위에 앉아 눈을 감고, 누군가가 이곳에서 바다를 향해 시선을 두고 있었던 그 시절을 상상해보았다. 어쩌면 이곳에 배치된 병사는 외부의 적보다도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자신이 서 있는 이유에 대한 끝없는 의문과 싸웠을지도 모른다.

그 감정은 단순한 ‘탐방’이라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무게였다. 바위에 앉아 있는 동안, 마치 그 공간 자체가 말을 걸어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지켜야만 했던 시간’의 침묵이었고, 우리는 그 침묵 속에서 역사와 연결되었다.

이름 없는 오름, 그러나 의미는 깊은 역사 현장

제주의 무명오름은 말 그대로 ‘이름이 없는 산’이다. 이름이 없다는 건 우리가 그 존재를 기억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작은 오름 하나에도 수백 년의 시간이 축적되어 있으며, 사람의 손과 발, 그리고 감정이 스쳐 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다. 애월읍의 이 무명오름은 표지판 하나 없이, 기록 한 줄 없이 서 있지만, 그 위에 쌓인 돌무더기와 지형의 구조,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구전은 이곳이 단순한 야산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조선시대의 감시초소는 단지 군사 시설이 아니라, 국경과도 같은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특히 제주와 같은 외딴섬에서는 중앙정부의 힘이 미치기 어려운 만큼, 이들 감시초소는 정치적 통제와 해상안보를 동시에 상징하는 장소였다. 바다 건너에서 들이닥칠 수 있는 왜구, 밀무역선, 표류선 등에 대비하기 위해 설치된 초소들은 ‘지키는 이의 눈’이자, ‘지켜야 할 땅의 경계선’이기도 했다.

이 무명오름 정상에서 발견된 석축 잔해는 그 자체로 미완의 기록이며, 우리가 다시 역사를 발굴해내야 하는 ‘침묵 속의 문서’와 같다. 이곳은 단지 관광지가 아니라, 과거 누군가의 임무와 외로움, 그리고 국가를 위한 책임감이 집약된 장소였다. 병사는 해가 뜨고 질 때까지, 혹은 밤새 횃불을 지키며 누군가 오지 않기를, 혹은 무언가를 감지하길 바라며 그 자리에 서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반복된 시간은 결국 돌과 흙에 스며들어, 지금의 풍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