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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여행

경주 황성공원 인근, 잘 알려지지 않은 신라 귀족 무덤 이야기

경주는 수천 년의 시간을 품은 도시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경주의 역사는 대부분 대릉원, 불국사, 첨성대 등 이름난 유적들에 집중되어 있다. 그 외의 장소들, 특히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고 안내판도 없는 역사 공간들은 대부분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채, 조용히 시간의 흐름만을 견디고 있다. 이런 장소야말로 진짜 경주의 속살이자, ‘관광’이 아닌 ‘역사’를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다.

경주시 중심에 위치한 황성공원은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운동 공간으로 널리 이용되는 곳이다. 가족 단위 방문객이나 인근 주민들이 자주 찾는 이 공원은 겉으로 보기엔 여느 도시 공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황성공원 북서쪽, 산책로 뒤편의 조용한 언덕 아래에는 신라 시대의 귀족 무덤이 몇 개 남아 있다. 이 무덤들은 역사적으로 공식 등록되지 않은 채, 주인의 이름도, 묘비도 없이 존재해왔다. 언뜻 보기엔 단순한 흙 언덕처럼 보이지만, 이곳은 실제로 수백 년 전 신라인의 장례 풍습과 신분 구조, 그리고 도시 공간의 쓰임을 엿볼 수 있는 숨겨진 사적지다.

황성공원의 현재 모습과 위치 정보

황성공원은 경주시 성건동과 용강동 사이, 도심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면적은 약 47만 제곱미터에 이르며, 축구장, 야구장, 배드민턴장, 어린이 놀이터 등 시민 체육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평일과 주말 가릴 것 없이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겉보기엔 평범한 시민 공원이지만, 이곳은 신라시대 왕경 외곽 지역과 맞닿아 있어 고대 도시 구조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공원 전체는 평지와 완만한 언덕, 숲길로 구성되어 있고, 특히 북서쪽 산책로 외곽에는 사람들이 거의 드나들지 않는 외진 오솔길이 존재한다. 그 길을 따라 5~10분 정도 걸어 들어가면, 이내 자연 지형과는 확연히 다른 일정한 크기의 봉분 지형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들은 대형 무덤은 아니지만,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보기에는 뚜렷한 둥근 형태와 고른 높낮이, 그리고 일부 지역에서 발견되는 석재 조각들로 인해 인공적인 매장 흔적임을 금세 알아챌 수 있다.

이 일대는 1970년대 이후 도심 팽창과 함께 체육공원으로 개발되었으며, 당시에 일부 고분이 훼손되거나 흙으로 덮였다는 이야기가 지역 노인들 사이에서 전해진다. 정확한 위치와 구조에 대한 정밀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고고학자들과 향토사 연구자들은 이 일대를 ‘비공식 고분지대’로 분류하고 있으며, 특히 도심 외곽 귀족 무덤지대로서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경주 황성공원 인근, 잘 알려지지 않은 신라 귀족 무덤 이야기

숨겨진 신라 귀족 무덤의 역사적 배경

신라시대의 무덤 문화는 신분에 따라 크게 나뉘었다. 왕족과 최고위 귀족들은 대릉원과 같은 대형 고분에 묻혔고, 그 주변에는 중간 귀족이나 하급 관리, 기술관료 계층의 무덤들이 따로 조성되곤 했다. 황성공원 인근에 위치한 고분군은 크기나 구조상 왕족 무덤은 아니다. 하지만 그 형태와 배치, 그리고 주변 유적과의 거리로 미루어볼 때, 당시 중앙 행정에 참여했던 귀족층의 가족 묘역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중반에 이르는 시기는 신라가 통일 신라로 나아가기 위한 체제를 정비하던 시기였고, 수도였던 경주의 왕경 외곽에는 관료 귀족들의 거주지 및 가족 묘역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황성공원 북서쪽 언덕에 남아 있는 봉분형 무덤들은 대부분 크기가 일정하고, 주변에 널방 구조나 석재 파편이 일부 남아 있다. 이로 보아, 단순한 민간 무덤이 아니라 일정한 위계와 형식이 반영된 귀족 가계 중심의 묘역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지역 향토사 연구회와 일부 학자들은 “황성공원 외곽 고분군은 신라 귀족 가문의 소규모 묘역 단지로 기능했을 수 있으며, 왕경 경계 지점이라는 위치적 특성상, 그들은 중앙과 변방 사이를 연결하는 중간 계층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고분의 주인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곳에는 분명히 하나의 가문, 하나의 시대, 하나의 생애가 잠들어 있는 것이다.

현장 체험기 – 묵묵히 남아 있는 ‘이름 없는 시간의 흔적’

나는 아침 이른 시간, 관광객이 거의 없는 평일 오전에 황성공원을 찾았다. 공원 초입에서는 학생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고, 산책로에는 강아지를 데린 주민들의 모습이 여유롭게 보였다. 그러나 공원의 북서쪽 끝으로 향하면서 분위기는 서서히 바뀌었다.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흙길을 따라 들어가면, 어느 순간 도시의 소음이 모두 사라지고 완전한 정적만이 흐르는 숲길이 나타난다. 길은 좁았고, 양옆으로 잡초와 나뭇가지들이 흩어져 있어, 인적이 드물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길을 5분쯤 걷자, 어느 순간 땅이 미세하게 솟아오른 둔덕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자연 지형이라 생각했지만, 주변에 돌 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걸 보고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둥그런 봉분 형태는 매우 일정했고, 돌들은 사람이 손으로 다듬은 흔적이 있었다. 그 돌 중 일부는 평평하게 깎여 있었고, 마치 무덤의 외벽을 구성했을 법한 석재 구조물의 일부 같았다.

그곳에서 잠시 앉아 주변을 둘러보며, ‘이곳에 묻힌 이는 어떤 사람이었을까?’라는 질문을 떠올렸다.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는 이 무덤에는 누군가의 삶이, 가문이, 시대가 조용히 묻혀 있었다. 관광 안내도 없고, 설명도 없는 이곳에서는 오히려 더 깊은 역사적 울림이 느껴졌다. 유명한 유적이 주는 장엄함과는 또 다른, 조용한 시간의 무게가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이름 없는 유적이 더 깊은 감동을 준다

경주를 여행할 때 우리는 보통 이름이 있는 유적지를 찾는다. 첨성대, 안압지, 대릉원 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고, 관광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다. 그러나 진짜 경주의 가치는 그런 유명한 유적지 바깥에 있는, 이름 없는 장소들에 숨어 있다. 황성공원 북쪽의 무명 고분군은 그런 점에서 매우 귀중한 장소다. 공식적인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지 않고, 입장료도, 안내도 없다. 하지만 그 안에는 누군가의 인생 전체가 묻혀 있고, 신라인들이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기억했는지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