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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여행

고창 읍성 외곽에 숨겨진 일제 밀정 은신처 – 기록되지 않은 역사

고창 읍성은 전라북도 고창군에 위치한 대표적인 조선시대 방어 성곽이다. 성 안에는 향토관, 무기고, 옛 관아 건물 등이 잘 복원되어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 인기 명소지만, 사실 읍성 밖으로 몇 걸음만 벗어나면 전혀 다른 시간과 분위기가 흐르는 공간이 펼쳐진다.

그곳은 공식 안내서에도 등장하지 않고, 안내 표지판 하나 없이 숲과 밭, 오래된 흙담 사이에 조용히 숨겨져 있다. 그런데 바로 그 공간 어딘가에 일제강점기 밀정들이 몸을 숨기고 활동을 조율했다는 ‘비공식 은신처’가 존재했다는 이야기가 조용히 전해지고 있다.

이 이야기는 문헌으로 남아 있진 않지만, 고창 지역 토박이 노인들과 향토사 연구회, 그리고 지역 중학생들의 ‘구술기록 프로젝트’ 등을 통해 일부 단서가 퍼즐처럼 이어지고 있다.
어딘가에 숨어 있었던 그 ‘은신처’는 정확히 어떤 모습이었을까? 정말로 그곳에서 밀정이 숨어 활동했을까? 아니면 독립운동가를 감시했던 기록조차 남기지 않으려 했던 권력의 ‘흔적 지우기’ 전략이었을까?

고창 읍성과 주변 지리 구조

고창 읍성은 조선 단종 3년(1455년)에 축성된 석성으로, 둘레는 약 1,684m, 높이는 평균 4~5m에 달한다. 성 내부에는 관아와 무기고, 수령의 집무 공간이 있으며, 현재도 고창군청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어 도시 속 유적으로 기능하고 있다. 성곽을 따라 걷는 길은 잘 정비되어 있고, 주말이면 많은 관광객들이 산책을 즐긴다.

하지만 읍성의 북서쪽, 즉 향토관 뒤편 골목을 따라 외곽 농가 지역으로 빠지는 길은 생각보다 깊숙하고 조용하다. 이곳은 관광객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으로, 좁은 시멘트길이 밭과 묘지를 지나며 마을 뒷산 방향으로 이어진다.

바로 이 지역에 대해 몇몇 고창 지역 노인들은 “예전 일본 경찰과 조선인 정보원들이 드나들던 돌담 집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 집은 이제 흔적조차 사라졌지만, 일부 토지 경계석과 ‘외지인 출입 금지’라는 오래된 표지석이 남아 있어, 단순한 민간 거주지 이상의 기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해방 이후 주민들은 이 일대를 ‘감시촌’이라 불렀고, 이 구역의 외곽 담장 일부는 밖에서 안이 거의 보이지 않도록 이중으로 축조된 특이한 구조였다는 증언도 있다. 지형적으로는 읍성과 가까우면서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위치여서, 감시·통신·은신에 모두 적합한 공간이었다.

일제강점기 밀정 은신처의 전설과 유래

이 은신처 이야기는 지역 기록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구술 전승 속에서 놀라울 만큼 구체적으로 남아 있다.
어느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저 담 너머로는 절대 애들 보내지 말라 했어. 이상하게 밤에 불빛도 없는데 사람 그림자가 오가고, 가끔 말소리도 들렸다니까.”

고창 향토사 연구회의 한 연구자는 말한다.
“해방 직후, 그 일대 집 한 채는 마을 사람들의 손으로 헐렸다. 이유는 말하지 않았지만, ‘왜놈 냄새가 베었다’는 말을 여러 번 들은 바 있다. 그곳에서 무언가가 이루어졌던 건 사실로 본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밀정 은신처가 단순한 숨는 곳이 아니라 지역 감시와 밀고, 신문 정보 정리의 중계 장소였다는 점이다. 일부 주민은 “어떤 날은 군인도, 경찰도 아닌 낯선 사내가 말을 몰고 들어갔다”는 증언도 남겼다. 이들은 조선인 밀정일 수도 있었고, 일본인 경찰이 위장한 인물일 수도 있다.

밀정은 역사의 뒷면에 있다. 이름이 없고, 흔적도 지워졌다. 그러나 그들이 어디에 있었고, 무엇을 했는가를 따라가는 일은 결국,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삶을 복원하는 과정이다. 고창 읍성 바깥, 지금은 조용한 밭과 숲길 사이 어딘가에 그 흔적은 남아 있다.

고창 읍성 외곽에 숨겨진 일제 밀정 은신처 – 기록되지 않은 역사

현장 탐방기 – 골목을 돌고, 돌담을 마주하다

나는 햇살이 유난히 강했던 봄날, 읍성의 성곽길을 따라 북서쪽 골목으로 발을 옮겼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향토관을 지나면서 되돌아가지만, 나는 작은 골목을 따라 논길을 지나 외곽 주택가로 향했다. 마을 사람 몇 명이 일하고 있었고, 나를 보며 “거긴 볼 거 없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이 오히려 나를 더 그쪽으로 이끌었다.

10분쯤 걸었을까. 과수원 끝자락에서, 무너진 돌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돌은 누군가 일부러 깎은 듯 매끄러웠고, 담장의 일부는 이중 구조로 쌓여 있었다. 그 옆에는 지금은 쓰지 않는 낡은 우물 하나가 남아 있었고, 바닥엔 오래된 목재 부스러기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 자리에 서자, 이상하게 말할 수 없는 압박감과 침묵이 감돌았다. 누군가 이 담을 넘어가며 조심스레 주변을 살폈을지도 모르고, 담 너머에서는 누군가를 기다리던 침묵의 시선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돌담 앞에서 사진을 찍지 않았다. 단지 오래 서 있었다. 그리고 주변 흙을 한 줌 쥐어보았다. 그 속에는 아무 냄새도 없었지만, 무언가 말하지 않은 이야기가 여전히 묻혀 있는 듯했다.

정리 – 우리가 이런 장소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밀정이라는 존재는 오랫동안 역사 속에서 ‘배신자’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들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그들이 활동했던 구체적인 공간도 분명히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그 공간을 기억하고 기록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 공간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마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고창 읍성 바깥, 누구도 관심 가지지 않던 좁은 골목 어귀와 무너진 돌담 하나가 보여주는 역사적 상상력은, 단순한 전설이 아닌, 구체적 현실에 대한 조각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곳이 사라진다 해도,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이 그 장소를 마음속에 한 번쯤은 그려봤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억한 장소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